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집 센 성(姓)씨로 안강최(安•姜•崔), 즉 안安, 강(姜), 최(崔)씨를 많이 언급한다. 거기에 황소고집 황(黃)씨도 보태는 경우도 있다.
고집 센 성(姓)씨의 서열을 정하는 데에도 재미있는 설이 많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살아있는 김(金)씨 3명이 죽은 최(崔)씨 1명을 못 이기고, 최(崔)씨 셋이 모여도 강(姜)씨 1명을 못 당하며, 강(姜)씨 셋이 모여도 안(安)씨 앉은 자리를 못 넘본다는 얘기도 있다
또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安은 뿔이 하나, 姜은 뿔이 둘, 崔는 뿔이 세 개가 있는 데 뿔이 많이 있을수록 고집이 세다는 얘기도 있으나, 우스갯소리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씨가 앉은 자리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얘기는 최영 장군이 “내가 옳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 했고, 실제로 풀이 자라지 않은 데서 전승되었다고 한다.
@ 안(安)씨가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는 조선 세조 때 단종을 끝까지 추종하다 학살되고 최고의 명문가에서 천민으로 전락되었던 순흥 안(安)씨 집안의 멸문지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낙인이 찍혀버려 크게 활약한 인물이 별로 없지만 안중근의사를 포함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 중에 안(安)씨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잘못된 것을 잡으려는 안(安)씨의 고집이 독립운동에서도 발현된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 강(姜)씨가 고집이 세다는 유래는 고려 말 충신 강회중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의 유신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물리치고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에서 그의 마음과 기개가 사람들에게 강(姜)씨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 최(崔)씨 고집은 고려 말의 충신 최영 장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본다. 최영 장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죽어가면서,
"내가 역적이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옳다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이들 '안(安)', '강(姜)', '최(崔)'와 고집에서 밀리지 않는 성씨가 또 있는데, 바로 황소고집이라고 알려진 황(黃)씨 고집이다.
조선 영조 때 집암 황순승 선생으로 인해 황고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이 분의 고집과 연관된 야사가 많은데, 그중 재미있는 하나만 소개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좋은 논을 조상 제사에 쓸 쌀을 생산하는 용도로만 정해 놓고 그 논에는 절대 퇴비를 쓰지 않고 쌀뜨물로만 거름을 주며 정결하게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보니 하인이 그 논에서 방귀를 뀌는 것을 보고 그 논에 물을 빼고 새 물을 대기를 3년을 하고서야 새로 농사를 지어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여기서 말한 고집이란 쓸데없이 억지를 부리는 '무식한 태도'가 아니고, 남들이 다 가더라도 바르지 않은 길은 절대 가지 않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우직하게 살았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고집의 대가인 성(姓)씨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