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마곡사 백범당
【마곡사와 백범 김구 (원종스님)이야기】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명성황후가 왜놈들의 손에 무참하게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구는 왜놈들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하였다.
마침 하룻밤 묵었던 여관에 일본군 장교가 있는걸 보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하였다.
여관에는 40여명 손님들이 있었고 왜군장교는 칼을 차고 있었다.그리고 젊은 청년이 보좌관으로 곁을 지키고 있었다.잘못 하면 그자의 칼에 죽을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때 김구는 위의 게송을 읊으며 원수를 죽이고 자신도 죽기로 작정하니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었다.왜놈과의 결투에서 호기를 부리기 위해 여관주인에게 오늘 내가 먼길 떠나니 7인분 밥상을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 일본군 장교는 보좌관을 시켜 밥값을 계산하고 있었다.김구는 때를 놓칠수 없다는 생각에 일어나서 일본군 장교에게 다가갔다. 네 이놈! 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발길로 가슴을 차 한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 뜨렸다.
그리고는 발로 힘껏 목을 밟았다.왜군장교의 울부짖는 비명 소리에 여관방문이 일제히 열리며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왔다.누구든 이 왜놈을 위해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겠다.김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군 장교는 칼을 빼어 들고 김구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김구는 잽싸게 칼을 피하면서 발길질로 옆구리를 내질러 넘어 뜨렸다.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자 칼이 땅바닥에 굴렀다.그는 칼을 잡아 왜군 장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도질하였다.단숨에 왜군장교를 처단한 김구는 왜군장교의 소지품을 뒤져보니 일본군 중위 쓰치다 였다.800냥 엽전을 회수하여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② 해방 후 이시영 부통령과 마곡사를 찾은 백범 김구 선생

③ 백범 김구 선생이 마곡사를 참배한 모습
그는 손수 포고문을 작성하여 우리 조선의 국모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 왜군을 죽였다고 기록하였다.그리고는 이화보에게 안악군수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라 나는 집에서 기다리겠다.사람들이 피신하라고 권했으나 김구는 말하였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 하여야 되오.그래야 사나 죽으나 값이 있지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일이 아니오.왜놈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치를 씻기 위해 행한 일이니 정정당하게 대처하겠다. 그후 김구는 체포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하였다.간수를 매수하여 탈옥에 성공한 그는 마곡사로 찿아와 은신을 위한 출가를 하였다. 그때 받은 김구의 법명은 원종스님이다.
마곡사에는 백범당이 있고 최근에는 그가 머무렀던 백련암까지 산책길을 만들어 백범명상길이라고 이름하였다.
1번 사진은 마곡사 백범당 모습이다.2번 사진은 해방후 이시영 부통령과 마곡사를 찾아와 기념촬영한 모습이다.3번 사진은 백범이 송광사를 참배한 모습이다.4번사진은 마곡사 전경이다. 5번 사진은 백범의 기념식수이다.
서북청년단 간부 안두희에게 암살 당한 김구는 민족의 한을 안고 이승을 하직하였다.그는 마곡사에서 49재를 봉행하였다.
우리 한국사회의 혼란의 뿌리는 친일파들에 의해서 민족 지도자들이 암살당한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숙청되고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까지 되풀이 되고 있다.

④ 마곡사 전경/현장스님

⑤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 식수